미국은 1980년 5월, 신군부가 정권 찬탈 야욕 아래 반인륜적 살상행위를 자행하는 상황에서 독재 타도와 민주주의 회복을 외친 광주시민들에 대한 학살을 승인했다. 광주항쟁 당시 미국이 신군부의 광주시민 학살을 승인한 것은 20세기 가장 충격적인 국제범죄 유형 가운데 하나다.
당시 한국군 작전지휘권을 장악하고 있던 주한미군사령관은 미군 최고통수권자인 미국 대통령 카터의 승인 아래 신군부의 민간인 학살 작전을 명령했다. 이는 정전협정 체제 아래 벌어진 전쟁범죄라는 논란과 함께 유엔헌장, 국제관습법, 국제인도주의 원칙에 저촉될 만큼 중대한 사건이라 할 것이다.
신군부 소속 범죄자들은 최고 사형선고까지 받았지만, 정작 이들을 실질적으로 지휘한 미국 정부 인사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 이유는 미국 정부가 누가, 무엇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 철저히 비밀에 부쳐왔기 때문이다.
광주학살 4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미국 측에 대한 법적·도덕적 책임 규명 요구가 이어지는 이유는, 미 대통령 승인 아래 벌어진 광주학살이 유엔헌장 제1조 3항의 인권 및 기본적 자유 존중 원칙, 제2조 4항의 무력 사용 금지 원칙, 제네바협약 제3조와 추가의정서 제51조의 민간인 보호 규정, ICC 규정 제7조의 ‘인도에 반한 죄’, 국제관습법상 국가책임 원칙 등에 위배된다는 의혹 때문이다.
‘광주’는 발생 40여 년이 훌쩍 지난 오늘까지도 핵심 진상이 완전히 규명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미국 정부가 왜 한국군의 무력 진압을 승인했는지, 신군부 내부에서 누가 최초 발포를 명령했는지 등 5·18의 핵심 진상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북한군 침투설’과 같은 악의적 가짜뉴스 또한 우리 사회를 혼란 속에 몰아넣고 있다. 세계가 주목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아직도 진실의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그 핵심에는 미국이 설정한 ‘비밀의 장막’ 뒤에 숨겨진 군사전략적 국가이기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5·18의 진실에 도달하지 못하는 가장 결정적 이유는 당시 한반도의 군사적 실권을 쥐고 있던 미국 백악관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의사결정 과정이 지금까지도 ‘안보’와 ‘국익’이라는 이름 아래 비밀의 성역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1980년 5월 22일 NSC 정책검토위원회(PRC)가 왜 주한미군사령관을 통해 신군부의 유혈 진압을 승인했는지에 대한 핵심 자료들은 여전히 검게 삭제되거나 가려진 채 공개되고 있다.
5·18과 관련된 미국 정부 공식 자료인 이른바 ‘체로키 파일’은 당시 미국 정부의 역할과 개입을 보여주는 일부 자료일 뿐이다. 주한미군의 군사전략과 전술핵 보유 상황 등 핵심 비밀자료는 여전히 비공개 상태다.
당시 미국 백악관이 5·18 상황을 시간 단위로 점검했다는 사실은 광주항쟁이 미국의 전략적 국익과 직결된 사안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당시 미국은 주한미군을 통해 정전협정 이후 남한에서 수행하던 핵전략과 전시계획(SIOP)에 대해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다. 특히 광주 미 공군기지(K-57)의 역할과 미군의 움직임은 극비로 관리됐다. 한미동맹 구조 속 미국의 이기주의적 보안 논리는 한국 정부가 미국의 책임을 묻거나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는 것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장치로 작동해 왔다.
카터가 광주시민 학살을 승인한 1980년 5월, 미국은 냉전기 핵전략인 SIOP(단일통합작전계획)에 따라 주한미군을 미국 전략사령부(STRATCOM)의 극동 핵공격 작전기지로 운용하고 있었다. 군산·오산 등 미 공군기지는 중국과 소련을 감시·정찰하고 유사시 타격하기 위한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했으며, 활주로에는 즉각 출격 가능한 전폭기들이 24시간 대기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 정보당국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군 남침 가능성은 없었다. K-57 역시 휴전선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 위치한 기지였다. 그렇다면 미국 대통령이 직접 백악관 안보회의를 소집할 정도로 광주 상황을 중대 안보사안으로 판단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K-57이 남한 최대 규모의 전술핵 저장기지였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가능하다. 이 전술핵무기들은 당시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았던 북한이 아니라 중국과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미국 대통령은 세계 핵전략 수행 과정에서 핵무기의 안전 관리에 대한 최종 책임자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정은 몇 가지 사실에 의해 뒷받침된다. 5·18 직전 발생한 부마민주항쟁 당시에도 위수령이 발동됐고 다수의 미군기지가 존재했지만, 미국 백악관은 광주에서처럼 직접적이고 이례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이 제3세계 시민항쟁에 대해 직접 무력 진압 결정을 승인한 사례 역시 광주가 거의 유일하다.
5·18 당시 주한미군은 미국 본토 방어를 위한 세계전략 SIOP의 최전선 기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K-57은 오산·군산 미군기지와 함께 중국과 소련을 겨냥한 핵공격 태세 유지에 필요한 전술핵 저장기지 역할을 수행했다는 기록들이 미국 정부 자료와 국제 전략연구기관 자료들에서 확인된다.
K-57은 당시 남한 최대 전술핵기지이자 일본 유엔사 후방기지 전력이 한반도로 이동하는 집결지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미국 대통령의 5·18 직접 개입은 미국 핵전략 수행을 위한 핵무기 안전관리 시스템이 작동한 결과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5·18의 역사적 진실은 지금도 규명 과정에 있다. 체로키 파일의 미공개 부분과 추가 비밀문서 공개는 진실
규명의 핵심 열쇠가 될 수 있다. 5·18과 미국 핵전략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검증 역시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다. 한국 정부는 5·18 정신의 헌법 수록 추진과 함께 진상규명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한미 양국 정부는 지난 70여 년 동안 주한미군의 역할을 단지 ‘대북 억제용’으로만 선전·홍보하며 진실을 은폐해 왔다. 이러한 ‘전략적 기만’은 한국 국민을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위험에 노출시키는 반헌법적 행태다.
오늘날 한국 사회 일각에서 6·25 참전 해외 군인들에 대한 일방적 찬양과 감사가 반복되고, 광화문광장 한복판에 참전용사 기념물이 세워져 논란이 이어지는 현실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민주화의 상징 공간인 광화문에 총을 받들어 든 형상의 조형물을 세우는 것은 한미동맹 구조 속에서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해온 역사에 면죄부를 주는 행위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전략적 유연성을 이유로 사실상 치외법권적 특권을 누리는 주한미군의 군사행동을 미화하는 미국의 심리전에 협조하는 의미까지 가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돌이켜보면 미국은 광주 이전에도 자국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한국 민중의 희생을 방조하거나 주도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주4·3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이다.
제주4·3 당시 미국은 극동 냉전전략에 따라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했고, 이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대규모 학살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순사건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과정에서도 미군은 군사고문단과 유엔군의 위치에서 이를 방관하거나 실질적으로 지휘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광주항쟁의 진상이 여전히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오늘날, 한미동맹의 구조는 1980년과 본질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략적 유연성 강화 속에서 한미동맹은 더욱 기울어진 구조로 변하고 있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제2의 광주가 발생할 조건이 여전히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5·18 당시 미국 정부가 규정한 주한미군의 역할이 오늘날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유사한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 마련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것은 자주와 주권 회복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은 미국이 수십 년 동안 비밀에 부쳐왔던 주한미군의 중국·러시아 견제 역할을 공식화한 것이다. 대만해협 위기나 남중국해 분쟁 발생 시 주한미군이 개입하게 되면 한국 역시 자동 참전 상태에 놓일 위험이 있다. 이는 한국 정부가 부인해온 자동참전 구조가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될 경우 한국 국민은 강대국 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참극을 피할 수 없다.
최근 주한미군사령관이 서해 미중 군사대치 문제나 DMZ 관할권 문제 등에서 한국 정부와 충돌하는 모습은 마치 점령군 사령관을 연상케 한다. 이는 동시에 1980년 5월 당시 한미동맹 구조가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미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주권국가의 위상을 짓밟는 행태는 광주 당시와 본질적으로 닮아 있다.
한국 정부는 5·18 민주화운동 정신의 헌법 수록 추진과 함께 미국의 비밀주의와 광주 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진실 규명에 나서야 한다. 만약 이를 외면한다면 심각한 직무유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역대 보수·민주 정권 모두가 광주 진상규명 문제에서 비자주적 태도를 반복해 왔다는 점에서 현 정부는 달라야 한다.
오늘날 미국의 국가이기주의는 동맹조차 적대시하는 단계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자발적으로 광주항쟁의 진실을 공개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 더욱이 광주 미 공군기지 이전 계획으로 인해 당시 시민학살 결정과 관련된 역사적 현장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광주항쟁의 진실 규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벌어진 시민학살은 미국의 국가이기주의와 기형적 한미동맹 구조 속에서 발생한 대한민국의 비극인 동시에 미국이 자행한 국제법 위반 사례 가운데 하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광주항쟁 진상규명을 통해 한미동맹과 비밀주의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어떻게 훼손했는지에 대한 국제법적 검증 역시 이뤄져야 한다.
미국은 민간인 학살의 원인 제공과 예방 의무 위반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와 문서 전면 공개에 나서야 한다. 한국 정부 역시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지키는 국가로서 더 늦기 전에 1980년 5월 한미동맹이 광주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2026년 5월 18일
공동기자회견 주최단체 일동
광주평화포럼,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사)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기념)단체 연대회의,(사)민족작가연합,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빈민해방실천연대, 사월혁명회, 아시아태평양노동자연대회의 한국위원회, 우리다함께시민연대, (사)이재유기념사업회, 자주연합, 자주민주통일위원회, 전국시국회의, (사)정의·평화·인권을 위한 양심수후원회, 통일광장, 통일시대연구원, 통일중매꾼, 평화어머니회, 평화통일시민연대, 평화통일시민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