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핵추진 잠수함이 자주국방인가(25.11.6)

‘자주국방’의 이름으로 되살아난 핵잠 논의

​이재명 정부가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핵추진 잠수함(이하 핵잠) 도입 계획을 공식화한 것은 한국 안보정책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보이지만, 그 실체는 ‘자주국방의 진전’이 아니라 한미동맹 종속의 심화라는 역설을 품고 있다.

​정부는 핵잠 사업을 “북핵 대응의 현실적 대안”, “자주국방의 상징”으로 포장하지만, 실제 구조를 들여다보면 기술·운용·정책의 거의 모든 측면이 미국 승인 없이는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체계이다. 이번 핵잠 추진은 군사적 효용보다 정치적 상징성과 동맹 의존 강화라는 성격이 훨씬 짙다.

​자주국방 실현인가, 예속국방 확장인가

​핵추진 잠수함은 원자로 연료(고농축우라늄 혹은 저농축우라늄), 추진체계 설계, 방사선 관리기술 등 핵심 기술이 미국의 원자력협정(123협정) 아래 통제되는 영역에 속한다.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잠을 개발하려면 미국의 핵연료 공급 승인과 기술이전 허가가 선행돼야 한다. 이 구조는 ‘자주국방’이 아니라 한미 핵협정의 종속 체제 안에서의 국방 자율성 시늉에 가깝다. 미국이 승인해야만 추진할 수 있는 ‘자주국방’은 이미 모순이다.

​더구나 미국은 핵추진 잠수함의 핵심 기술을 동맹국에도 이전한 전례가 거의 없다. 2021년 오커스(AUKUS) 협정으로 호주에 핵잠 기술을 일부 제공한 사례가 유일하지만, 그조차 완전 이전이 아니라 미국·영국이 건조한 함정을 호주가 구매하는 방식이었다. 한국이 추진하는 핵잠도 결국 핵연료·운항체계·정비까지 미국 통제하에 건조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곧 한국의 국방비로 미국의 군수산업과 일자리를 지원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군사적 실효성: ‘억제력’보다 ‘상징효과’가 크다

​정부는 핵잠이 “북핵에 대한 비대칭 억제력”을 제공한다고 주장하지만, 군사적 실효성은 제한적이다. 한반도 주변 해역은 좁고 수심이 얕아 잠수함의 은폐성과 작전 범위가 제한적이며, 미국·일본의 감시망이 포화된 상황에서 독자적 작전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인공지능(AI), 위성감시, 무인잠수정(UUV) 기술의 발달로 핵잠의 전략적 가치는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결국 한국형 핵잠은 실질적 방어자산이라기보다 정치적 과시용 무기체계에 가까우며, ‘비대칭 억제력’이라는 명분은 동북아 군비경쟁의 또 다른 명분으로 작용할 위험이 크다. 북한은 이를 ‘남한의 핵무장 사전단계’로 규정하며 핵·미사일 개발의 정당성을 강화할 것이고, 중국과 러시아 역시 한국의 미·일 안보 블록 편입 가속화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핵잠=핵무장 사다리? — 비핵화 정책의 자기모순

​일각에서는 “미국이 북핵을 사실상 인정하면 남한도 최소한 핵잠은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러나 핵잠 도입은 비핵화 목표를 유지하기 위한 현실적 선택이 아니라 핵무장으로 가는 기술적 사다리로 기능한다. 핵잠 개발은 고농축우라늄(HEU) 생산 능력 확보를 전제로 하며, 이는 핵무기 제조 역량과 사실상 동일하다. 국제사회는 이를 비핵화 약속의 잠재적 위반 행위로 간주할 것이다.

​즉, 핵잠 추진은 ‘비핵화’라는 외교적 기조와 충돌하며, 국내에서는 오히려 ‘핵무장 불가피론’을 자극해 핵 군비 경쟁의 내적 정당화 장치가 된다.

결국 “비핵화를 지키기 위한 현실적 수단”이라는 주장은 논리적 자기모순이다.

​경제적·환경적 부담: 자주국방의 비용 왜곡

​핵잠 한 척의 건조비용은 3조~5조 원 수준이며, 운용·정비·폐기 비용까지 포함하면 수명주기 총비용이 10조 원을 넘는다. 이는 연간 국방예산(2025년 61조 원)의 약17%에 달하는 막대한 부담으로, 재래식 방위력 현대화 예산을 잠식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방사능 누출, 폐연료 처리, 해상 안전성 등 환경적·사회적 리스크에 대한 평가와 공론화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핵잠 도입은 군사적 필요보다 정치적 상징, 즉 ‘핵 보유국 대열에 근접한 국가’라는 이미지 창출을 위한 결정으로 읽힌다. 이는 국방의 합리성보다 정치의 상징성이 우선한 결정이며, 장기적으로 방위력 효율성을 오히려 떨어뜨린다.

​외교·안보적 파급: 동맹 강화인가, 지역 긴장인가

​핵잠 도입은 한미동맹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한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 참여를 기정사실화한다. 핵잠이 미국 필리조선소에서 건조되고, 운항체계·핵연료 관리까지 미국 통제 아래 진행된다면 이는 곧 한미동맹의 전략적 하위편입을 의미한다.한국의 선택이 자주국방이 아니라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보조 축으로 자리 잡는 과정이 된다.

​이에 대한 중국·러시아의 반발은 불가피하다. 특히 중국은 이를 ‘한국판 오커스(AUKUS)’로 간주하며 경제·안보 전방위 압박을 강화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핵잠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장애물이자, 남북 대화의 재개 가능성을 더욱 좁히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핵추진 잠수함이 아닌 평화전략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핵잠 도입을 ‘자주국방의 상징’으로 포장하는 것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그 실체는 기술적 종속, 경제적 부담, 외교적 고립, 군비경쟁 격화, 남북관계 파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자주국방은 핵기술의 군사화가 아니라, 동북아 평화협력체제 구축과 군비통제·신뢰구축 메커니즘 강화에서 실질화돼야 한다.

​‘핵추진 잠수함=자주국방’이라는 정부의 구호는 자주라는 이름의 종속, 평화라는 이름의 군비경쟁으로 귀결될 위험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핵잠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체제의 실질적 복원 전략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자주국방이다.

2025년 11월 6일

자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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