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가 한국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우려’와 ‘반대’를 표명한 것은 명백한 내정간섭이며 입법주권 침해이다. 이는 동맹이라는 외피를 쓴 채 자국 빅테크 기업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노골적인 압박이며, 민주주의와 주권 존중이라는 미국 스스로의 가치 선언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이다.
흔히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으로 불리는 이 법률 개정안은 2025년 12월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찬성 170명, 반대 3명, 기권 4명으로 가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인해 본회의 일정이 지연됐고, 내란-외환 정당인 국민의힘은 위헌성과 절차적 문제를 이유로 반발했으며,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를 촉구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나 개정안은 법률로서의 효력을 갖추었으며, 이후 공포·시행 절차가 남아 있는 상태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온라인 공간에서의 불법 정보 유통 방지, 이용자 권리 보호, 플랫폼 책임성 강화를 목표로 한 국내법이다. 허위·조작 정보 유통 규제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등의 내용도 담고 있다. 이는 한국 사회 내부의 문제의식과 입법 논의를 통해 추진된 것으로, 특정 국가나 기업을 겨냥한 법이 아니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가 외교 채널과 공식 성명을 통해 문제를 제기한 것은, 한국의 입법 과정을 자국의 이해관계에 종속시키려는 전형적인 패권적 행태이다.
한국의 온라인 광고 지출은 수조 원대이다. 한국 내 글로벌 플랫폼 트래픽 비중에서 구글(YouTube 포함)이 약 30.6%를 차지하고 넷플릭스 6.9%, 메타 5.1% 등 미국 플랫폼의 영향력이 광범위하다. 검색 시장에서는 세계에서 구글 점유율이 90%이고, 모바일 운영체제 시장에서는 안드로이드 약 73.5%와 iOS 약 26.0%로 총 99.5%를 점유한다. 한국의 디지털 생태계는 이미 구조적으로 미국 플랫폼에 종속돼 있으며, 정보통신망법 개정은 이러한 불균형을 시정하려는 최소한의 제도적 시도이다.
미국은 이를 두고 ‘표현의 자유 침해’와 ‘디지털 장벽’을 운운한다. 그러나 이는 철저한 이중기준이다. 미국은 자국 내에서는 틱톡 금지법, 해외 플랫폼에 대한 국가안보 심사, 대규모 데이터 접근 제한 등 강력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2023년 기준 미국 연방 및 주 정부 차원에서 발의·통과된 플랫폼 규제 법안은 300건을 넘는다. 자국의 규제는 ‘안보’와 ‘자유 수호’로 정당화하면서, 타국의 규제는 ‘검열’과 ‘장벽’으로 낙인찍는 태도는 제국주의 오만일 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국의 이번 개입이 한국 민주주의의 핵심 절차를 훼손한다는 점이다. 국회 입법은 국민의 대표기관이 주권에 따라 행사하는 권한이다. 외국 정부가 특정 법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수정 압박을 가하는 것은, 선출되지 않은 외부 권력이 한국의 법질서 형성에 개입하는 행위이다. 이는 국민주권과 권력분립을 정면으로 침해한다.
미국의 진짜 우려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수익 구조이다. 한국은 1인당 데이터 소비량 세계 상위권 국가이며, 2025년 기준 한국의 모바일 데이터 평균 사용량이 12GB를 넘는다. 이 막대한 데이터와 여론 공간을 장악한 미국 플랫폼에 대한 규제 강화는 곧 초과이윤과 지배력에 대한 도전이다. 미국 정부의 개입은 자국 빅테크의 이익을 ‘국익’으로 포장한 로비의 연장선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저자세 외교가 아니다. 한국 정부와 국회는 이번 사안을 단순한 외교 마찰이 아니라 주권과 민주주의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미국의 부당한 압력에 대해 분명히 선을 긋고, 정보 주권과 이용자 보호를 위한 입법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 동맹은 복종이 아니라 상호 존중 위에서만 성립한다.
미국이 진정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존중한다면, 한국 국민이 선출한 국회가 한국 사회의 필요에 따라 제정하는 법을 존중해야 한다. 한국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은 정당한 주권 행위이며, 이에 대한 외압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미국의 내정간섭과 우려 표명을 강력히 규탄하며, 한국의 입법 주권과 정보 주권을 지켜내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시급한 과제이다.
2026년 1월 13일
자주연합
